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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W페스타]할리 타는 옆집언니 신계숙 "궁둥이를 들어라"

입력시간 | 2021.10.05 00:30 | 하지나 기자 hjina@edaily.co.kr
26일 제10회 이데일리 W페스타 패널 참여
스쿠터 타다가 할리데이비슨 도전
중국어 전공에서 중화 요리사로
"남자·여자 생각 말고 도전해야"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누비면서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맛본다. 그냥 오토바이도 아니고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할리데이비슨이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는 영화, 방송 등에 등장할 때 육중한 몸체에 특유의 스타일로 남성적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 주인공은 왜소한 체구의 여성이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즉흥적으로 노랫가락을 흥얼대며 오토바이를 타는 자유분방한 모습은 친근감을 넘어 그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EBS에서 시즌 1, 2에 걸쳐 인기리에 방송됐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달걀을 깨지 않고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요?”

‘뭐든 하려면 시작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신 교수가 한 말이다.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는 “궁둥이를 들어라”라고 조언했다. 그는 “중국 사람들이 ‘움직일 동’ 글자를 멋있게 써서 액자에 걸어 놓는다”면서 “뭐든지 무겁게 힘을 갖고 움직일 때에 돌아간다.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의 인생도 ‘도전’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64년 생. 50대 후반의 나이다. 누군가는 타고 있던 오토바이에서도 내려와야 할 나이지만 신 교수가 할리데이비슨을 타기 시작한 건 불과 2년 전이었다.

처음에는 스쿠터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다 갱년기 열증 때문에 참지 못하고 내려버렸다. 갇혀서는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토바이를 사자’는 생각을 했다. 스쿠터를 타다 “오토바이는 할리”라는 생각에 적금을 들고 전용 면허를 땄는데 적금 만기가 너무 길어서 오토바이를 먼저 사버렸다. 그 동안 할리데이비슨을 타다가 2번 넘어졌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두려움보다는 오토바이 예찬론이 먼저였다. 신 교수는 “일보일배 심정으로 한바퀴 돌고 쉬기를 반복하며 할리데이비슨을 연습했다. 8월 뙤약볕을 잊을 수 없다”며 “신이 만든 창조물 중에 인간이 최고라면, 인간이 만든 창조물 중에는 오토바이가 최고인 것 같다”면서 웃었다.

우연같지만 운명처럼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오토바이를 탔더니 미식기행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신 교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가 힐링이 됐다”면서 “좋은 풍경 앞에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맑고 밝은 사람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것들이다.

중국어를 전공하고 중국요리에 뛰어들었다.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한식을 배우는 게 아니다. 언어와 요리는 전혀 다른 분야다. 졸업을 앞두고 교수가 ‘요리를 해보라’고 권했다. ‘많은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님이 나한테 요리를 하라고 한 거는 그 만큼 정확하게 본 것’이라고 생각하고 망설임 없이 따르기로 했다. 교수 소개로 서울 연남동의 유명 중식집 향원에 취직을 했다.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관계자, 국무총리 등 유력인사들이 자주 찾기로 유명한 식당이다. 처음에는 홀에서 접객을 하다 6개월여 만에 주방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1개월 넘게 사장을 졸랐다. 사장의 허락을 받고 나니 ‘여자가 왜?’ ‘대학까지 나왔는데 주방은 왜?’ ‘우리 밥그릇을 왜 뺏어먹게?’ 등 기존 구성원들의 반발이 일었고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그게 1987년이었다.

“어느 날 주방장이 부르더니 손을 동그랗게 말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안에 들어가는 양이 고기 250g인데 바쁠 때는 저울에 잴 수 없으니 이렇게 재야 한다고요. 그런 노하우를 배우면서 제가 주방식구로 인정을 받았죠.”

요리를 하면서 한숨을 쉬는 버릇이 생겼다.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를 하다보니 숨을 쉬기 어려웠고 산소가 뇌로 안올라가 생긴 버릇인데 주위에서는 ‘너 왜 자꾸’라며 오해를 했다. 향원에서 8년 일을 한 뒤 나왔다. 문화센터 강사, 가정 방문 요리교사, 대학 평생교육원 강사 등을 거쳐 대학 교수가 됐다.

신 교수는 “지금 생각해보니 남들이 보기에 남자들이 해야 하는 일을 내가 많이 했던 것 같다”며 “그런데 특별히 남자, 여자라는 생각을 안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을 돌면서 2000km였던 오토바이 주행거리는 6000km로 늘어났다. 늘어난 주행거리만큼 약간의 유명세도 얻었다. 신교수는 “하루는 어떤 분이 ‘어이~ 계숙이 동생’ 하고 불러서 이종사촌 오빠인 줄 알았다. 다들 반가워하신다. 사랑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한 소절 불렀다.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시종일관 흘러나왔다. 끊임없는 도전의 원동력인 듯했다.

신 교수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60세에는 중식당 사장이 될 거라고 했다. 식당 이름은 벌써 지어놨다. ‘계향각’, (신)계숙이의 향기를 담은 집이라는 의미다. 자신의 이름으로 요리를 손님들에게 내주는 거다. 주력 메뉴 선정도 끝냈다. 보슬보슬한 돼지고기 식감을 살리고 양념으로 맛을 내는 ‘동파육’이다. 이를 위해 30년 동안 돼지 300마리는 잡은 것 같다고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드론과 색소폰도 도전 중이다.

신 교수는 드론에 대해 “도전이 아니고 생활”이라고 말했다. 그는 “5년 후에는 다 드론을 타고 다닐 것”이라며 “드론을 타고 이동하려면 지금 연습해 놔야 그 나이에 수전증이 생겨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색소폰에 대해 묻자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이라는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를 불렀다. 그는 “이 노래를 듣고 배워보자고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며 “득음이 너무 힘들었는데 집 근처 종로 사직단에서 불다 관리인 아저씨에게 쫓겨나기도 했고 원효대교 아래서 불다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친구 생일에 축하곡을 불어줄 정도는 된다”며 웃었다. 그는 지금 ‘서울아트 앙상블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도전은 습관인 거 같아요. 뭘 하나 하면 거기서 또 파생이 되거든요. 특히 ‘이거 남자가 하는 건데 내가 해도 될까’라는 여성들의 고정관념은 도전을 막는 족쇄가 됩니다.”

신계숙 교수는 오는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리부트 유어 스토리(Reboot Your Story)-다시 쓰는 우리 이야기’를 주제로 열리는 제10회 이데일리 W페스타에 연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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